[머니투데이 기사] 철강재 원산지 표기법안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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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vs 과잉규제'' 철강재 원산지 게시, 20대 국회 선택은
내가 사는 아파트를 짓는데 사용된 철강재의 원산지가 공개적인 장소에 게시된다면 어떨까. 전반적인 아파트 품질이 제고되고 소비자들의 알 권리가 보호되는 계기가 될까, 아니면 고가의 국내산 철강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건설원가를 높여 소비자의 권익을 해치는 결과가 될까.
건설공사 현장이나 건설공사 완료시 설치하는 표지 및 표지판에 철강재 등 주요 건설자재와 부재의 원산지 표기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20대 국회 논의 테이블에 오른다. 19대 국회 때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건설업계 등의 반대에 막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국민안전 및 소비자들의 알권리, 고가의 국산 철강재로의 쏠림, 과잉규제 여부 등이 핵심 쟁점이다.
6일 국회에 따르면 이찬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6일 건설현장과 건설 완료시 사용된 주요 건설 부·자재들을 공개된 장소에 게시하게 하는 내용의 건설산업기본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재는 공사명, 공사내용,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 공사금액, 공사기간 등만 명시되고 있는데, 레미콘, 아스콘, 바닷모래, 철강재, 부순골재, 순환골재 등 주요 건설 부·자재들의 원산지도 함께 표기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원산지 표기 대상 건설 부·자재 6종은 ‘건설기술 진흥법’ 제57조제1항의 품질확보 대상 건설자재・부재 조항 및 관련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원산지 게시는 개정안 시행 후 최초로 건설공사에 대한 입찰공고를 하는 경우(입찰공고가 없으면 최초로 도급계약을 체결하는 때)부터 적용한다. 개정안은 또 시정명령 불이행에 대한 과태료를 행정형벌로 상향해 부실공사에 따른 책임소재도 명확히 했다.
개정안은 건설공사의 품질, 안전과 직결되는 철강재 등 주요 건설자재・부재의 원산지 표기를 통해 발주자와 입주자 등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원산지 정보 공개를 통해 한국산업표준(KS) 인증 등 품질이 검증된 건설자재ㆍ부재의 사용을 장려한다는 취지다. 개정안은 중국산 등 저가 수입철강 제품으로 고전하고 있는 철강업계의 숙원 법안이기도 하다. 관세청의 철강재 단속 결과에 따르면 2013년 272억원, 2014년 1886억원, 2015년 1356억원어치 규모가 원산지 표시를 위반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토교통부와 건설업계에는 이 법안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이다. 건설자재는 이미 관련 법에 따라 KS에 적합하거나 품질시험 등을 거쳐 그 이상의 품질임이 증명된 경우 사용하도록 의무화돼 있고, 건설공사 표지에 건설자재 원산지 표시를 강제할 경우 수입산 철강재가 KS 이상의 품질인 경우에도 불합리하게 사용이 기피돼 값비싼 국산 철강재 사용이 강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수입산 철강재를 사용한 건축물의 경우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건축주 및 입주자의 반발이 예상되고, 현재도 ‘대외무역법’에 따라 철강재 자체에는 원산지표시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므로 별도로 원산지표시 관련 규제를 신설할 필요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철강업계는 관련 규정에도 불구하고 수입 철강재의 경우 허위 품질성적서를 제출하거나 중량미달 제품을 사용하는 등 불법행위가 지속적으로 적발되고 있다는 점을 든다. 발주자나 건물 입주자, 건물 매입자 등이 건물 안전에 직결되는 사항임에도 사용된 건설자재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이들의 알 권리 보장 및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원산지 표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될 전망이지만 통과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찬반 주장이 팽팽한데다 개정안이 국토교통부와 건설업계의 영향력이 큰 국토교통위원회 소관인 탓이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철강업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은 서명한 의원들 가운데는 국토위 소속 의원도 적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의견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면서 "통과가 되든 그렇지 않든 논의라도 충분히 이뤄져야 하는데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전·투명한 철강재 원산지 표시" vs "아파트 가격만 올려"
#.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회사원 김민경씨(가명·여)는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6일 새집을 알아보던 도중 뉴스를 통해 전날 밤 울산에서 발생한 규모 5.0 지진 소식을 들었다. 갑작스런 지진 소식에 걱정이 된 김씨는 마음에 두고 있던 아파트의 철골 구조가 어떻게 구성된 것인지 알아보려 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포털에서 검색해보니 저질 수입 철강재들이 건축물에 알게 모르게 활용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와 우려스러운 마음이다.
김씨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발의된 법안이 이찬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건설공사 현장뿐만 아니라 공사 완료시 게시·설치하는 표지판에 주요 건설자재 및 부재의 원산지 표지가 의무화된다.
특히 그동안 확인할 길이 없었던 철강재 원산지 및 공급업체가 공개된다. 해당 업체의 철강재가 KS(한국산업표준)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도 소비자가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아파트 분양 브로셔 및 건물 표시석 등에도 해당 내용이 적혀, 소비자가 손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택 소비자의 알권리를 거의 100% 충족시킬 수 있다.
아파트 등 주택의 안전성도 담보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철강재 정보를 모두 알기 때문에 값싸지만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 철강재를 쓸 가능성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철강협회는 최근 자체 실태조사 결과, 수입 철강제품(중국 6개사, 15개 샘플) 중 5개사 6개 샘플이 KS기준에 미달했다고 밝혔다. 3개 샘플은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돼 KS인증 취소사유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철강재 원산지 표시가 정확하게 이뤄진다면 안전성을 무시한 일부 건설사들의 ''꼼수''도 미리 걸러낼 수 있다는 평가다. KS인증을 받은 철강재에 KS를 받지 못한 중국산 수입 철강재를 일부 섞어 혼용하는 방식 등이 그동안 적발돼왔는데, 이같은 행위를 사전에 보다 강력하게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인 셈이다.
저질 철강재의 활용은 때때로 대형참사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근절해야 할 건설업계의 행태로 손꼽힌다. 2014년 대학생 10명이 사망하고 204명이 부상당해 충격을 줬던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참사의 주요 원인도 중국산 짝퉁 철강재 활용이었다.
반면 부작용으로 인해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중국산 철강재 중에서도 우량한 품질의 제품이 많은데 국내에 ''중국산=저품질''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중국산 철강재를 사용한 건축물의 입주자 및 건축주가 집값하락 등을 이유로 집단 반발에 나서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무엇보다 아파트 가격의 상승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산 못지 않은 품질임에도 가격이 싼 중국산 철강재를 사용해 주택가격을 낮출 수 있었는데 ''중국산''이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국산 철강재만 사용하면 주택가격이 당연히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건축업계는 국산 철강재의 경우 중국산과 품질 수준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통상 가격이 13∼36% 이상 높게 형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주택 소비자 양극화도 우려된다. 서민은 중국산 철강재가 사용된 아파트, 상류층은 국산 철강재가 사용된 아파트에 거주하는 현상을 국가가 주도해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철강재 원산지 표시를 법으로 강제해도 주택가격에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주택가격을 결정하는 데 있어 철강재 가격은 큰 변수가 아니기 때문에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더민주 관계자는 "철강재를 중국산으로 돌릴 경우 아파트 단지 하나에 500만~600만원 정도 남길 수 있다고 여겨진다"며 "대단지를 공급하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중국산 철강재를 쓰면 수십개의 단지에서 많은 돈을 남길 수 있지만, 주택 1개만 사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강재 원산지 표시법안은 국민안전 위한 필수조건"
철강업계는 철강재 원산지 표시를 포함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건축주와 입주자, 건축물 매입자 모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취지"라는 입장이다.
손정근 한국철강협회 고객지원실장은 "이번 개정안은 정상적인 수입 자재 사용을 억제하는 게 아니다"며 "건설 자재의 원산지 정보를 최종 수요자인 건축주 및 입주자, 건축물 매입자에게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정근 실장은 "건설자재는 건축물이 완공된 이후 콘크리트 타설 및 내부 마감재 시공 등으로 사실관계 파악이 불가능해,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도 원산지표시 제도가 필요하다"며 "인간생활의 3대요소인 의식주분야 중 주택분야만 원산지표시 제외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전과 가장 밀접한 주택분야의 원산지 표시는 국민의 알권리와 재산권 선택에 중요한 요소이자 당연한 규정"이라고 덧붙였다.
철강재 원산지 표시가 국민안전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손 실장은 "품질 양호한 수입산 철강재가 KS기준에 적합하다면 교체 요구를 할 수도 없으며, 국산 건설자재만을 사용할 의무도 없다"면서도 "품질시험을 거치지 않은 수입품을 사용한 경우 교체 요구가 당연하므로 품질관리 부족에 따른 추가 비용은 건설업자가 부담하는 게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손 실장은 수입철강재 대체에 따른 공사원가 급증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국산 및 외국산 자재 가격차는 전체 공사비 대비 극히 일부"라며 "국산 건설자재만을 사용할 경우 건설원가 상승으로 건설경기가 침체한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99㎡(약 30평) 규모 아파트에 12톤의 수입산 철근을 사용하면 국산 강재 대비 99만원을 절감할 수 있지만, 절감 효과는 해당 규모 수도권 아파트 평균가격 4억653만원의 0.16% 수준에 불과하다.
원산지 미표기에 따라 위조 사례는 급증하고 있다. 건설시장에는 여전히 품질이 검증되지 않거나, 원산지를 위조한 불량 자재가 범람하고 있다. 관세청이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에게 최근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철강재의 원산지 위반 단속 건수가 2013년 58건에서 지난해 111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이 중 95건이 중국산을 국내산으로 둔갑시킨 사례였다.
손 실장은 "KS가 아닌 제품은 50톤당 1차례씩 시험을 실시하고, 건설CALS시스템에 등록하도록 하고 있으나, 수입량에 비해 시험횟수가 매우 저조하다"며 "실제 정부의 현장점검 결과 불량 자재 사용 등이 다수 적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 실장은 "WTO의 분쟁해결기구에서 다룬 무역분쟁 케이스 중 원산지 규정 및 표시제도가 문제가 된 적은 없다"며 "원산지 규정과 표시제도는 강화해 가는 것은 국제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제품의 경우 원산지 표시를 강화해 수입 및 유통단계에서 부적합재를 차단하는 제도는 각국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WTO 협정도 이러한 경우 관리 감독 강화를 용인한다는 뜻이다.
손 실장은 "유통단계에서의 불법행위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과 품질관리는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며, 단속권한이 있는 국토교통부 등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단속, 처벌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면서도 "현행 건설기술진흥법 상 현장점검 3일 이전 통보의무로 인해 실효성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개정안 통과시 단속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정부기관의 건설자재 관리 감독 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불량 자재 유통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대폭 경감시킬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정부의 단속활동 이전에 수입자재를 사용하는 건설업자가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건설자재 품질 확인 및 검사를 철저히 해 유통 단계에서의 불법 행위가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